메커니즘 디자인? 이기적인 유전자

분명 나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도 적게 버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노동을 통해 얻는 (돈 혹은 보람 따위의) 효용은, 그 노동으로 만들어낸 재화가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에 대개 비례한다. 똑같은 재능, 똑같은 집안에서 태어나더라도 (무엇이 잘 팔리는 진로인지 제대로 파악할 정도로) 미처 성숙하기도 전에 싸구려 재화를 만드는 진로를 우연히 선택하면 불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재벌 혹은 빈민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의 운명의 갈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자본주의가 옳은가, 공산주의가 옳은가 따위의 판단은 할 수 없다. 보편적인 도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개인의 1차적인 선택은 명확하다. 덜 가진 자는 판을 뒤엎길 바라고 더 가진 자는 판을 지키길 바란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중재되지 않고 사회가 불안정하면 전체의 행복이 감소한다. 그래서 학교, 회사, 국가, 문화권 그리고 인류 사회 각각에 맞는 몇가지 규칙과 규칙을 집행하는 이가 생겨난다. 하지만 그 규칙은 개인의 최대 효용을 보장하지는 않으므로 이기적인 개인들은 다시 생각한다. 규칙을 어기고 1차적인 목표를 추구했을 때의 효용이 큰가, 규칙을 따르고 목표를 수정했을 때 효용이 큰가 저울질하는 것이다.

범죄자가 된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거금을 얻는 효용이 더 크다고 판단하면 은행을 털러 가는 것이다. 내가 굳이 은행 강도의 '합리적 선택'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 '은행은 털지 않아야 한다'라는 도덕률 따위는 전체 구성원의 최대 행복이라는 objective function을 최적화하기 위한 하나의 heuristic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global optimum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은행을 못털어서 불행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몇가지 조건이 만족되면 나는 은행 강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길 것이다. 내가 은행 직원이거나 고객이어서 나의 효용이 위협받는 경우이다. 혹은 사회 분위기가 점차 불안정해져 규칙을 충실히 따르던 나의 효용이 잠재적으로 위협받을 것이란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이다. 준법 시민이라면 대개 후자의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도덕이나 규칙 따위는 (나아갈 미래가 아닌) 현재의 질서를 반영한다. 당연히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한 자들은 지금의 규칙을 옹호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더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도 유리한 지위를 가지므로 덜 가진 자들은 항상 현재의 규칙으로부터 더 많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 되지 못한 소시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동성애자 및 장애인들이 그렇다. 내가 사회 지도층이라면 보수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소시민이라면 돈과 권력에 비례하지 않는 평등한 발언권을 요구하고 진보를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도덕과 법의 이름으로 보호받으려는 순진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기적인 개인들을 조화시키기 위한 메커니즘 디자인을 연구하던 이들이 200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시장 경제나 사회주의도 그런 메커니즘의 하나였다.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메커니즘을 디자인하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냐는 문제라고 본다. 현재 이뤄진 메커니즘 디자인의 연구 상황에 대해 알아보자. 혹시 권력 분배의 메커니즘도 디자인하는지?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totohero.egloos.com/tb/954782 [도움말]

덧글

  • 지구인 2008/05/20 04:43 # 삭제 답글

    메커니즘 관련 검색하다 들리게 되었습니다. Thomas님의 사고 메커니즘이 저와 흡사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덧글 입력 영역